동대문 동대문 문열어라, 남대문 열렸다. 서대문 형무소


이런 말들 덕분에 우리에게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은 상당히 익숙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방위는 동서남북인데 왜 북대문은 없을까? 있다면 잘 안알려진 것일까?
문은 문인데 문 역할을 못한 숙정문 이야기
(이미지 출처-나무위키)
우리 도성의 북대문의 이름은 숙정문이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이었진만 어느샌가 이름이 숙정문으로 바뀌었다. 숙정문은 1395년 나머지 삼대문을 지을 때 백악산 동쪽 기슭에 함께 축조되었다. 하지만 이 숙정문은 너무 높은 산위에 있어 통행이 어렵기도 하고 해서 사실상 관문의 역할을 잘 하지 못했다. 이 성문으로 출입하기 위해 오르막 산비탈을 올라 내려가면 또 북한산이 있기에 성북구 쪽으로 산비탈을 내려가야 하는 심각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렇기에 개고생을 하며 산비탈을 타며 숙정문에 출입하는 것보다 옆에 있는 동소문을 통과하는 것이 훨씬 편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숙정문을 냅두고 혜화문 쪽으로 다녔다.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이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산지형인 숙정문에 비해 혜화문은 평지였기 때문에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래서 문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련을 겪었다.
숙정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태종 13년인 1413년에 최양선이라는 풍수 학자가 백악산 서쪽과 동쪽은 경북궁의 양 팔인데 여기에 문을 내면 지맥이 손상된다는 상소를 내었고 그에 따라 백악산 서쪽에 있는 창의문과 함께 폐쇄되고 소나무를 심어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했다. 폐쇄되던 중간에 연산군의 명으로 숙정문을 약간 동쪽으로 옮기기도 했다.
조선시대동안은 숙정문은 문의 역할보다는 제사의 역할을 더 많이 치뤘다. 숙정문은 음양오행에서 음에 해당했는데 음은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숙정문은 가뭄이 들면 비가 내리라고 문을 열었고 비가 많이 오면 비가 그치라고 문을 닫았다. 결국 숙정문은 조선시대 내내 이런 식으로만 활용되고 문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하지 못했다.
현대에도 이어지는 시련
그래도 풍수지리를 믿지 않는 근현대에 와서는 조금은 나은 취급을 받지 않을까 했지만 여전히 저 높은 곳에 있는 곳을 올라 서울을 통행할 사람은 없었기에 여전히 방치되었고 나무로 된 문루도 소실되었다.(이 문루는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는 말도 있고 연산군 때 옮기면서 같이 사라진거라는 말도 있지만 자세한 것은 모른다.) 현대에 와서는 1963년에 들어서 사대문에 인정되어 사적 1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던 중에 이 인근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하필이면 간첩이었다. 저 지도를 보면 북악산 기슭으로 넘어오면 바로 청와대 뒷편으로 연결되기에 간첩들이 그 루트를 이용했던 것이다. 간첩들은 자하문에서 막히기는 했지만 청와대 경비 차원에서 창의문(자하문)과 함께 봉인되었다. 1976년에는 대통령의 특명으로 문루가 복원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은 38년이 지난 2006년에야 해제되어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군사보안 통제구역이기에 아무때나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고 신분증 필참에 정해진 입장 시간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봉인당하고 현대에 와서도 봉인당한 숙정문의 슬픈 이야기였다.
숙정문 관람 안내
매일 09:00 - 16:00하절기(3~10월)/ 퇴장시간-18:00
매일 10:00 - 15:00동절기(11~2월)/ 퇴장시간-17:00
매일 10:00 - 15:00동절기(11~2월)/ 퇴장시간-17:00
준비물: 신분증 원본 지참 필수(군사보호지역으로 신분증 미지참시 탐방 불가)
내국인 성인 :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내국인 아동 : 부모님 및 보호자 동반시 입산 가능
(아동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확인 필수)
외국인 : 여권 또는 외국인등록증
내국인 성인 :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내국인 아동 : 부모님 및 보호자 동반시 입산 가능
(아동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확인 필수)
외국인 : 여권 또는 외국인등록증
운영 요일: 화~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의견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덧글